김수근의 ‘공간 사옥’, 현대미술 뮤지엄으로 탈바꿈

00511994701_20140822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1977년 완성한 ‘공간 사옥’이 21일 현대미술 전시 공간인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새롭게 문을 열었다. 김창일 아라리오 그룹 회장이 뮤지엄 2층에서 자신의 컬랙션 100여점을 선보이는 개관 전시회와 건물 매입 및 개관 작업 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종근 기자root2@hani.co.kr

[문화‘랑’] 문화공간, 그곳
(24) 서울 종로 율곡로 ‘아라리오 뮤지엄…’

9개월 개조 공사 뒤 첫 공개
좁은 계단과 무수한 방들
모두 전시 공간으로 변화
김수근 공들인 건물 핵심 유지
김창일 회장 “두렵고 설렌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83,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창덕궁과 현대그룹 사옥 사이, 아담한 한옥을 끌어 앉은 채 담쟁이 덩굴에 뒤덮힌 5층짜리 검정색 벽돌집은 지난 아홉달 동안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한국을 대표하는 천재 건축가 김수근(1931~86)이 지난 1971년 착공해 77년 완성한 ‘공간 사옥’. 완공 이후 폐쇄적인 느낌의 겉모습과 달리 내부에 한옥의 막힘없는 공간 연결 방식을 도입해 전통 건축의 아름다움을 현대건축으로 되살렸다는 찬사와 함께 우리 건축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쓰임새도 남달랐다. 공간건축사무소, 월간지 <공간> 편집실, 화랑 등이 입주해 건축가뿐 아니라 문화인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다. 특히 소극장 ‘공간사랑’은 공옥진의 ‘병신춤’, 김덕수 사물놀이패의 사물놀이 등을 소개하며 문화운동의 발원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이제 국내 굴지의 갤러리 소유의 전시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지난해 11월 공간사의 부도로 사옥이 경매 위기에 처하자, 미술품 컬렉터이자 사업가인 아라리오 그룹 김창일 회장이 150억원에 사들여, 자신이 35년 동안 수집한 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뮤지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00511993901_20140822
미로같은 뮤지엄 내부 계단.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내가 이 건물을 사들였을 때 사람들은 이 모든 걸 내가 꾸민 음모가 아니냐고 의심했다. 하지만 나는 버림받은 김수근의 작품을 아트를 통해 살려보자고 생각했고, 건축물 보존을 원칙으로 아홉달 동안 (개관)작업을 했다. 하지만 여전히 두려움과 설렘이 있다. 김수근의 건축물과 내가 평생 모은 예술품을 함께 알려달라.” 위대한 건축가의 유산을 150억원에도 사들이지 않는 우리 현실에 김수근이 버림받았다 생각해 자신이 건물을 구입했지만, 건축가와 문화인들 사이에 일종의 성소와 같은 이 공간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가 여전하다는 것을 의식한 듯 그는 이렇게 말했다.
실제 건축가와 문화인들은 지난해 말 경매 위기에 처한 공간사옥을 문화재로 등록하고, 공공기관이 매입해 건축박물관으로 전환할 것을 정부에 요청했다. 결국 올해 2월27일 등록문화제 586호로 지정됐다. 원칙적으로 50년 이상된 건물이 등록문화재 선정 대상이지만, 건축·문화적 가치를 고려해 보존해야 한다는 여론에 손을 든 것이다.
그러나 소유권은 이미 아라리오 그룹 김 회장에게 넘어간 상태였다. 김 회장은 공간사옥을 훼손하지 않고, 김수근의 작업실을 보존한다고 거듭 약속했다. 하지만 공간 사옥을 아끼는 이들은 여전히 의구심을 거두지 못했었다.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로 이름을 바꿔 21일 언론에 처음 내부를 공개한 공간 사옥에선 뮤지엄 개관전, ‘REALLY?’가 열렸다. 김 회장의 컬렉션 3700여점 가운데 43명 작가의 작품 100여점을 전시한 것이다.
뮤지엄으로 탈바꿈한 공간 사옥은 1층 외부 중앙홀에 티켓 창구가 설치되고, 뮤지엄 샵이 배치되는 등 일부 변화가 있었다. 또 내부 전시 공간 확보를 위해 일부 가설물과 유리 칸막이가 철거됐다. 5층까지 오르는 비좁은 계단 등에는 철제 안전 막도 설치됐다.
하지만 김수근이 7년동안 부수고 다시 짓기를 거듭한 끝에 완성한 건물의 핵심은 대부분 그대로 유지됐다. 무작정 높은 건물을 지어 올리던 70년대, ‘인간 척도’(humam scale)와 ‘공생’을 중시한 김수근은 한 사람이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낮고 좁은 계단과 224cm 높이의 낮은 천장을 가진 크고 작은 방들을 중첩시켜 푸근함과 아늑함을 제공했다.

00511994001_20140822
담장이 덩굴에 뒤덮힌 외부 전경. 이종근 기자 root2@hani.co.kr

붉은 색 벽돌을 그대로 드러낸 채 미로처럼 퍼져있는 이 좁은 계단과 무수한 방들은 모두 전시 공간으로 변화됐다. 몸을 움츠린 채 계단을 오르다보면 김한나, 크리스티안 마클레이, 앤디 워홀 등의 작품들을 마주할 수 있다. 내부 주차창으로 쓰인 공간에는 브론즈로 람보르기니 차량의 모형을 만든 뒤 주황색 아크릴 물감을 두껍게 칠한 2톤 무게의 <더 스컬프쳐 Ⅱ>(권오상 작)가 전시됐다. 애초 용도가 주차창이었다는 걸 인식시키려는 의도다.
김수근은 또 2층부터 4층까지 중앙이 탁 트인 공간을 중심으로 층간 구분이 다소 모호한 방들을 배치해 보는 사람의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이 모든 방과 공간, 심지어 화장실도 예술작품으로 가득 채워졌다. 비디오 아트의 선구자 백남준의 , <노매드>, <히드라 부다>를 비롯해 중첩된 방마다 바바라 크루거, 신디 셔먼 등 국내외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배치했다.
특히 현대그룹 사옥과 마주한 건물면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 모서리 공간에 설치된 영국 현대미술가 마크 퀸의 작품 <셀프>가 눈길을 끈다. 작가 자신의 두상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의 피 4.5리터를 채워 넣은 일종의 자화상이다. 냉동 장비가 구비된 특수 환경에서만 유지되는 작품의 특성을 고려해 전시 공간은 영하 23~24℃로 맞춰졌고, 전원 차단에 대비해 별도의 냉동고까지 놓여있어 좀 괴기스럽게 보일 수도 있다. 김 회장은 “김수근의 천재성을 느끼게 하기 위해 이 작품을 설치했다”고 말했다.
김수근이 한 때 살림집으로 썼던 것으로 알려진 5층은 빛 바랜 비닐 장판과 곰팡이 슨 벽지까지도 그대로 남겼다. 그리고 개빈 터크의 왁스 전신상인 <또 하나나의 부랑> 등의 작품을 배치했다.
주연화 아라리오 갤러리 총괄디렉터는 “기존 사무실의 집기를 치우고, 누수를 막는 공사와 동선 확보를 위해 유리벽을 제거했을 뿐, 책꽂이, 천장의의 페인트칠은 물론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콘센트까지도 그대로 살렸다”며 “건물은 거의 원형 그대로”라고 말했다. 천재 건축가 김수근의 채취가 묻어있는 미로 같은 70년대 건물, 그 안에서 관람객들은 과연 현대미술의 작은 오솔길을 마주할까, 아니면 어색함을 경험할까. 9월1일부터 일반공개가 시작된다.

신승근 기자skshin@hani.co.kr

(from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652185.html)

 

Leave a 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