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이 안 보인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적이 안 보인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가

[토요판] 박성민의 2017 오디세이아

 

2000년대는 관료의 시대다. 그다음 자리는 재벌이 차지했다.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열렸다. 그리고 또 하나의 파워그룹, 법조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최고, 최후의 판단자다. 일러스트 장광석

[토요판] 박성민의 2017오디세이아 ② 누가 결정하는가?-권력이동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1991년 설립한 ‘민(MIN) 컨설팅’ 대표. 30년간 정치를 현장에서 관찰하고 수많은 선거를 이끌었다. 전략의 중요성을 이해하고 승리를 위한 캠페인 방법을 몸으로 익혔다. 세계 최고의 전략컨설팅 회사를 꿈꾼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지혜가 민주주의라고 믿고 있다. ‘힘든 일은 있어도 나쁜 일은 없다’는 인생관으로 버틴다. 책과 영화, 커피를 사랑하며 걷는 것을 즐긴다. ‘2017 오디세이아’를 통해 차기 대선을 향한 여정을 독자들과 함께한다. 격주 연재.

‘정치적 문제는 해결할 수 없고,
경제적 문제는 이해할 수 없다’
-데이비드 흄

세상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세 가지 중 하나다. 원인도 알고 해결책도 아는데 실행하지 않는 경우, 원인은 아는데 해결책은 모르는 경우, 그리고 원인도 모르는 경우다. 우리는 합계 출산율 1.19의 초저출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인구를 유지하는 합계 출산율은 2.1이다.) 내수를 키워 무역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까?(국내외의 전문가들이 해결책이라고 이구동성으로 말하지만 지표는 점점 악화되고 있다.) 증세 없이 복지 재원을 마련할 수 있을까?(온갖 방법으로 쥐어짜면서도 언제까지 증세라는 단어를 숨길 수 있을까.) 공무원 연금은 정말 개혁할 수 있을까?(공무원들의 임금 기준이 100인 이상의 민간사업장인데 한국에서 100인 이상의 기업이면 중견기업 아닌가. 일본은 기준이 50인 이상 사업장이다.) 낙수 효과(트리클다운)는 여전히 작동하는가?(1975년과 2013년을 비교하면 국민소득에서 가계소득의 비중은 79.2%에서 61.2%로 줄고, 기업은 9.3%에서 25.7%로 늘었다. 1995년에는 70.6%였고 2012년에는 62.3%였으니까 계속 줄고 있는 것이다. 기업소득은 1995년에는 16.6%였는데 2012년에는 23.3%였으니 계속 늘고 있는 것이다. 1995년에서 2012년 사이 기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가계소득은 71.9%에서 67.7%로 줄고, 기업소득은 16.6%에서 18.2%로 늘었다. 우리가 가계소득은 더 많이 줄고 기업소득은 더 많이 늘었다.) 가계소득의 양극화는 해결할 수 있을까?(김낙년 동국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상위 10%가 48.5%를 가져가고, 하위 40%는 2.05%를 가져간다. 하위 70%로 확대해도 18.87%에 불과하다. 2010년 자료니까 추세로 보건대 더 악화되었을 것이다.) 영어를 절대평가로 바꾸면 사교육을 잡을 수 있을까?(엄마들은 수학학원만 돈 벌게 됐다고 단언한다.) 국가 재정은 괜찮은 걸까?(일반정부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39.6%에 불과하지만 공기업 부채를 포함하면 62.9%로 치솟는다.) 좋은 일자리(임금 높은 정규직)를 정말 늘릴 수 있을까?(모든 선진국 정치인들의 가장 큰 거짓말이다. 세계 경제가 글로벌화되고 기술 혁신이 빨라지면서 선진국 중산층의 일자리는 개도국으로 빠르게 이동했고 그 혜택은 국내의 소수에게 돌아갔다. 한국을 포함하여 대부분의 선진국에서 중산층은 빠르게 몰락하고 있다.) 이런 질문은 끝도 없다. 과연 원자력발전소는 안전한가? 가계부채는 관리 가능한가? 관피아는 척결 가능한가? 낙하산 인사는 없어질 것인가? ‘국민안전처’는 국민의 안전을 지킬 수 있을까? …

반독재시대는 적이 누군지를
확인할 수 있는 칼싸움의 시대
지금은 적이 누구인지,
어디서 공격하는지 알 수 없는
테러의 시대요 드론의 시대다정치인에 대한 유권자 힘보다
유권자에 대한 관료의 힘이
훨씬 커졌는데 이를 통제하는
정치의 힘은 점점 약해진다
정치인은 그럴 힘이 없어졌다

 

개혁의 대상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수많은 전문가들이 원인을 진단하고 해결책을 내놓았는데 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 걸까? 물론 더 많은 문제가 해결되었다는 것도 사실이다. 불가능할 줄 알았던 쓰레기 종량제도 하고 있고, 버스도 빠르고 질서 있게 중앙차로로 달리고 있다. 대통령도 직접 뽑는다. 기대 수명도 크게 늘었고, 교통사고 사망률도 줄었다.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식물국회’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있지만 치고받는 ‘동물국회’보다야 낫지 않은가? 흡연율도 크게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의 사전엔 만족이란 없다. 우리가 만족할 줄 알았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못했다. ‘불만’과 ‘분노’야말로 한국인의 높은 민도를 보여주는 척도다. 그 힘으로 산업화의 험산과 민주화의 준령을 넘었다. 그 계곡에 얼마나 많은 피와 땀과 눈물을 흘렸는지 남들은 몰라도 우리는 안다.그러나 앞으로는 개혁이 훨씬 어려워질 것이다. 산업화, 민주화가 ‘기적’이라고 불릴 만큼 어려운 일이었음은 분명하지만 기득권의 양과 질에서는 지금보다 훨씬 약했다. 지금은 문제의 원인도 알고 해결책이 있다고 해도 기득권의 저항 때문에 실행을 할 수가 없다. 더 암울한 것은 개혁 대상의 힘은 점점 강해지고 개혁 주체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개혁의 대상을 아는 것조차 더 어려워질 것이다.문제를 해결하려면 싸워야 할 적이 누구인가를 알아야 한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분노의 주체는 광장으로 나오기 때문에 잘 보이지만 분노의 대상은 꼭꼭 숨어들어 잘 보이지 않는다.

‘군인의 시대’였던 1980년대는 분노의 대상이 분명했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가 분명했다. 단지 용기만 있으면 충분했다. 가장 힘이 센 사람과 가장 자주 보는 사람과 가장 분노해야 할 사람이 같았으니까……. 반독재 투쟁이 쉬웠던(?) 이유다. 전선에서 이탈해 군인에게 포섭되는 순간 ‘어용’ 교수가 되고 ‘사쿠라’ 야당이 되었다. 대통령도 군 출신이고 집권당의 대표도 군 출신이던 시대였다. 정부의 장관들과 집권당의 간부들도 군 출신이 실세였다. 국회의원이나 공기업의 장, 심지어는 대사도 군 출신이 맡던 때였다. 무소불위의 군인들 앞에 모두가 숨을 죽이던 시대였다. 이때 대한민국을 이끌던 파워그룹은 군인, 관료, 재벌의 순서였고 정치인은 끝자리에 겨우 자리잡았다.

1990년대는 ‘정치인의 시대’였다. 1993년 문민정부인 김영삼 정부가 들어서자 지난 30년간 대한민국을 통치했던 군인들은 과거의 위세는 짐작도 할 수 없을 만큼 무기력했다. 전두환의 연희동 골목에서의 저항(?)을 끝으로 순식간에 몰락했다. 군인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3김을 필두로 한 정치인이었다. 그 뒤를 이어 관료들과 재벌들은 영향력을 더 확대했고, 그리고 남은 한 자리는 ‘언론’이 차지했다. 가히 1990년대는 언론의 시대라고도 할 수 있다. 기업을 망하게 할 수도 있고, 대통령도 만들 수 있다고 스스로 믿던 시대였다. 아마도 대부분의 언론이 이때가 전성기였으리라.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는 자부심이 대단했다.1990년대가 정치인, 혹은 정치의 시대였다면 그것은 네 가지 조건 때문이었다. 첫째, 카리스마 있는 지도자들이 정치를 이끌었다. 둘째, 경쟁 체제였다. 1988년부터 1997년까지 짧은 기간이었지만 여러 정당이 국민의 지지를 얻기 위해 인물, 정책, 혁신의 경쟁을 했다. 셋째, 정치권에 돈이 돌았다. 합법, 불법 가리지 않고 엄청난 돈이 흘러들어왔다. 넷째, 지지자들과 강력하게 조직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지구당을 중심으로 막강한 동원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삼손이 머리카락을 잘리자 힘을 잃었듯 정치도 2000년대 들어 지도자, 경쟁 체제, 돈, 조직을 잃자 힘도 잃었다.

선출되지 않은 권력, 사법의 정치화
글로벌화와 기술혁신을 강제적으로 앞당긴 계기였던 1997년의 외환위기는 대한민국의 세력 판도를 또 한번 바꿔 놓았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정치·경제 문제의 대부분은 외환위기 이후의 새로운 패러다임과 파워그룹의 신질서가 만들어낸 것이다. 신질서의 패권은 누가 차지했을까? 나는 관료가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본다. 그들이 그 자리를 원하지 않았을지는 몰라도 어쨌든 정치가 힘을 잃자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차지했다.

2000년대는 ‘관료의 시대’다. 그다음 자리는 재벌이 차지했다. 이들 역시 패권에 그리 관심 있지 않았으나 외환위기 이후 정치의 힘이 10분의 1로 줄어들고 기업의 힘이 10배로 커지자 자연스럽게 역전되었다. 정치가 경제를 지배하던 시대가 끝나고 경제가 정치를 지배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2000년대 들어 파워그룹에 새로운 세력이 등장했다. 법원, 헌법재판소, 검찰, 그리고 로펌을 포괄하는 ‘법조’가 그들이다. 이들은 대한민국의 최고, 최후의 판단자다. 스스로 그렇게 말하고 그렇게 믿고 있다. 실제로 자신들이 손으로 직접 뽑은 권위에도 승복하지 않는 사람들조차 사법적 권위에는 승복할 수밖에 없다고 받아들인다. 고소, 고발을 남발하고 걸핏하면 헌법재판소로 달려가는 정치의 사법화가 결국 사법의 정치화를 만들었다.

결국 2015년 현재 대한민국의 의사결정의 패권은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의해 장악되었다. 선출된 권력인 정치는 다시 끝자리로 밀려났다.조지프 나이는 <권력의 미래>에서 오늘날 ‘전쟁이 사유화’되었다고 통찰했다. 국가 간의 전면전이 아닌 알카에다, 이슬람국가(IS), 오사마 빈 라덴과 같은 비국가적 행위자(테러 집단)에 의한 전쟁을 ‘사유화된 전쟁’으로 묘사한 것이다. 그런데 전쟁만 사유화되었을까? 권력도 시장도 점점 사유화(독점)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슬로베니아 출신의 세계적인 철학자인 슬라보이 지제크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와 이혼하려는 것’을 자본주의 위기의 핵심으로 지적했다. 그는 ‘자본주의가 민주주의를 밀어왔지만 새로운 자본주의 모델은 더 이상 민주주의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라고 암울하게 진단했다. 그는 민주적으로 인준받지 않은 ‘테크노크라트’들이 모든 결정을 내리는 자본주의 현실을 고발한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를 쓴 마이클 샌델은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도 ‘돈으로 사는 시대’가 되었다고 날카롭게 비판했다. 반독재 투쟁보다 반독점 투쟁이 더 어렵다. 가장 힘이 센 자와 가장 자주 보는 자와 가장 분노해야 할 대상이 다 다르기 때문이다. 누구와 싸워야 하는지, 왜 싸워야 하는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알기가 쉽지 않다. 적이 안 보이는 시대다. 반독재 시대가 적이 누군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칼싸움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적이 누구인지, 어디서 공격하는지 알 수 없는 ‘테러의 시대’요 ‘드론의 시대’다. 보수·진보 할 것 없이 모든 엘리트들이 다 포섭되었기 때문에 ‘어용’도 없고 ‘사쿠라’도 없다.

관료들과 기업의 결탁인 ‘관피아’는 결코 척결되지 않을 것이다. ‘김영란법’도 원안대로 통과되지 못할 것이다. ‘법’도 사실상 관료들이 만들고 그 법이 실질적 효력을 갖게 하는 ‘시행령’도 관료들이 만드는 나라에서 기업과 공무원, 그리고 로펌의 결탁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뿌리 깊고 광범위하다. 이권이 있는 곳에 규제가 있고, 규제가 있는 곳에 권력이 있다. 그러나 불행한 사실은 관료, 재벌, 법조 누구도 자기들이 이 나라를 끌고 가고 있다는 자각이 약하다는 것이다. 관료들은 자기 부처의 이해를 중심으로 사고하기 때문에 국가를 책임진다는 전략적 사고를 하기가 쉽지 않다. 기업과 법조도 마찬가지다. 군인과 정치인은 그래도 전략적 사고에 능하고 대한민국의 운명을 자기들이 결정한다는 시대적 소명의식도 어느 정도 있었다. ‘국가 개조’라 부를 만한 개혁은 군인과 정치인이 이끌던 시대에 이루어졌다. 지금은 그런 자각을 가진 정치인을 거의 볼 수 없지만….

아, 세금 뜯어먹는 구조!
대한민국은 ‘국가주의’의 강한 지배를 받는 나라다. 사실상 전쟁 중인 나라이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 뉴스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나온다. 김정은의 모습과 미사일을 앞세운 북한군의 열병식 장면도 거의 매일 본다. 사드 배치나 킬 체인 구축이 뉴스를 뒤덮는 상황이니 전작권 재연기는 별다른 논쟁도 없이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일본이 후텐마 미공군기지 이전을 싸고 미국과 멱살잡이라도 한 것과 비교해 보면 놀라운 일이다. 사실 대한민국은 조금 심하게 말하면 모두가 ‘세금 뜯어먹는 구조’다. 정당도 운영 자금의 대부분을 국고보조금에 의존한다. 언론도 정부로부터 수백억원의 지원을 받는 통신사에, 지상파 방송사는 주파수를 거의 공짜로 쓴다. 대학도 두뇌한국21(BK21)이라는 명목으로 세금에 눈독 들인다. 벤처자금도 정부가 조성하고, 심지어는 시민단체도 정부의 공모사업비로 운영된다. 출판사도 ‘우수 도서’에 선정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나라에서 관료들의 힘이 어떻게 강해지지 않을 수 있는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정치인은 유권자에게 약하고 유권자는 관료에게 약하고 관료는 정치인에게 약한 먹이사슬(?)이 정상적으로 작동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은 정치인에 대한 유권자의 힘보다 유권자에 대한 관료의 힘이 훨씬 커졌는데 관료를 통제하는 정치의 힘은 점점 약해지고 있다. 힘의 균형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정치인을 통해 관료를 통제하기를 원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정치인은 그럴 힘이 없다. 민주주의의 위기이자 대한민국의 위기다.

 

박성민 정치 컨설턴트
from http://www.hani.co.kr/arti/SERIES/652/67501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