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Style] Façade Design

Façade Design

EXPERT column_건축가 서정훈

 

파사드

인간은 외부 정보의 대부분을 시각으로부터 얻는다. 건축에서 가장 먼저 시각적 접촉을 이루는 것은 건축물의 외피로 물리적 실체를 지각하고 본질을 인식하는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철근콘크리트와 철골구조가 보편화되면서 구조체와 완전히 분리된 건물 외부는 이론적으로나 실질적으로 건축 설계의 독립된 주제로 분리되어 건축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로 부각되었다. 건물의 정면성을 띠는 외피를 Facade라고 하는데 최근에는 주변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대표적인 건축적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파사드의 발견과 발전, 그리고 해석

경계

보호 (shelter): 건축적인 기술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자연은 삶과 죽음을 결정짓는 공포의 대상이었던 오랜 세월 동안 인류의 거처였던 동굴은 삶과 안위를 위해 철저하게 나를 자연으로부터 분리하는 유일한 장소였을 것이다. 그 많은 벽화들이 장식적이었든 종교적이었든 그림을 그린다는 행위는 인식과 욕구의 태동을 의미하였고, 견고한 동굴 벽은 그런 인식이 담긴 내부 공간을 향한 최초의 파사드이자 인간과 자연의 새로운 관계의 시작이었을 것이다.

수용 (adaptation): 건축물에서 들뢰즈가 말하는 감각은 신체와 환경이 만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존재론적 사건이 이루어지는 창이라고 볼 수 있다. 건축술을 포함한 과학기술의 발전은 자연을 공포의 대상에서 경외의 존재로 인식하는 계기가 되었고, 일상생활의 채광과 환기를 얻을 수 있는 관계맺음이 가능한 존재로의 인식 변화도 가져왔다. 이러한 자연에 대한 수용 방식의 변화는 미적 욕구를 자극하는 계기가 되었고 자연에 대한 고민과 욕구는 다양한 디자인의 건축물이 발전하는 기폭제가 되었다.

영역

조망 (frame): 르코르비지에는 건축의 역사는 곧 창문의 역사다라고 했다. 창틀 한 개의 수평재, 두 개의 수직재라는 기본 요소로 구성된 벽과 창은 도시에 풍경을 그린 캔버스로 볼 수 있으며 창의 수직, 수평재들은 풍경의 전통적인 분할인 근경, 중경, 원경을 창-캔버스 평면에 압축하고 있다. 창의 구축과 풍경의 구성을 합병시킴으로써 풍경을 탈자연화 시킨다. 건축가의 스케치처럼 열린 자연을 향한 창은 도심에 지어진 근대 건축이 성취할 수 없는 것이었다. 도심의 이러한 이중적 상황은 라울 뒤피의 겔마골목의 스튜디오에 잘 드러난다. 뒤바뀐 근경과 원경은 재현이 아닌 상황을 감상자 스스로 제안하고 있으며, 상황해석의 개방성이라는 의의를 갖게 된다.


 

조정 (character): 높이에 대한 욕구는 두꺼운 구조체를 만들었고, 기술의 발전으로 더 크고 얇은 유리를 만들었으며, 창과 벽의 두께로 인한 깊이는 내외부 모두 속하는 중간적인 영역성을 만들어냈다. 이미 환경이 되어버린 자연은 이 영역에서 인간을 위해 재조정되었는데 그 변화는 조도, 온도, 소리 등을 특징짓고 규정하는 요인이 되어 건축 환경의 품격을 구축하였다. 건축 시선을 통과시키면서도 시선의 대상이 되며, 도시에 상황을 연계시키고 변화시키는 사회적 행위의 배경이 되었다.

형식

비정형성 (formlessness): 모더니즘 시기의 산업 생산품들은 단순하였는데, 이는 도시와 자연을 지극히 단조롭고 익명적으로 만들었다. 이러한 자각은 포스트모더니즘적 대안의 하나로 복고적 제안을 하였으며 두터운 벽의 건축 혹은 외관에서 두꺼워 보이는 방식을 전개하였다. 극단적인 매스화와 파편화를 거쳐 볼륨이 강조되는 비정형 건축물이 한 축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주목받는 프랭크 게리의 후기 작품들에서는 표면의 마감을 이루는 패널들의 조합은 건축의 새로운 형태에 규칙성과 일관성을 부여하기 위해 균질하고 정형적으로 적용되었다. 전체적인 형태가 목적을 가지고 응집되어 있으며 일관성을 띠고 있는 유기적인 구성의 미적 특징의 강조는 건축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이미지에 집중하는 계기가 된다. 프랭크게리의 후기 작품이 각광받는 이유는 동시에 자하 하디드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가 각광받지 못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팝아트 초기 앤디 워홀과 로이 리히텐슈타인Roy Lichtenstein의 예술사적 장면에서 좀 더 극적인 예를 찾을 수 있다. 초기 만화를 모티브로 작품 활동을 하던 두 천재 작가의 승부 역시 벤데이도트Benday Dot라는 형식적인 창의성이었다. 망판을 통해 캔버스 위에 칠해지는 균일한 점들은 물감의 회화적 물성을 잃고 미니멀리즘적인 리히텐슈타인의 스타일만으로 캔버스 위에 재현되는 독특한 만화라는 예술사적 지위를 얻게 된 것이다.

 

이미지: 헤르조그 앤 드뫼롱의 작품은 포스트모더니즘 시대 이후 나타난 건축의 상징과 의미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했던 수많은 현대건축을 대표하며 과거의 건축이 더 이상 참조점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 재료의 본성에 주목하며 형태와 공간은 건축적인 구축 논리의 결과일 뿐이라는 일관된 태도를 잃지 않는다. 1980년대 후반 상징이나 인용을 단호히 거부하며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척점에 선 그들은 단순히 표피를 조정하는 것에 머물지 않고 구조적인 조건을 되살려내며 구축과 형태를 결합해내는 근원적인 건축으로 회귀하는 것, 그들의 건축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이러한 철학에 노출콘크리트라는 물성을 더해 건축물의 형태는 물론 그 형태가 만들어내는 내외부 공간의 이미지까지 극대화시킨 안도 다다오와 그의 다양한 작품 활동에서 정점을 찾을 수 있다.

 

인식

경계 확장: 장 누벨은 재료의 투명성을 이용해 빛을 다루는 것으로 유명하다. 또한 외벽의 독특한 디자인을 통해 빛과 그림자의 조화를 통한 환상적인 분위기의 건축물을 만들어낸다. 루브르박물관 아부다비의 경우 돔 내부로 들어오는 빛들이 내부 공간을 비추면서 내부 전체가 파사드의 확장된 영역으로 인지된다. 이러한 확장된 파사드는 내외부의 경계를 모호하게 하고, 사용자는 변화하는 과정으로서의 선험적 경험을 얻게 된다. 무한히 확장된 경계 사이에서 새로운 인식의 가능성이 열리는 것이다.

열린 상태 (opera aperta): 도요이토는 유동체로 존재하는 건축이야말로 전자시대에 요구되는 건축이라는 생각으로 새로운 테크놀러지, 즉 뉴미디어를 또 다른 자연으로 바라보고 있다. 수많은 행위를 유발시키는 뉴미디어를 새로운 가상의 자연으로 바라보겠다는 것이다. 뉴미디어를 통한 세계와의 접촉은 그동안 우리의 인식체계 속에 내외부 개념을 허물고 있고, 근대 이후 공동체 관계를 상실해가고 있는 시대에 뉴미디어가 고립된 존재의 소외감과 공허감을 극복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임에 주목한다.

환경, 자연-사람, 사람-사람, 도시

건축은 반자연적인가? 근원적으로 친환경적일 수 없는가?

자연과 인간의 관계맺음에서 확장되는 경계가 바로 환경인데, 이미 환경은 인식적 철학을 지나 디지털 세상으로 그 끝을 알 수 없는 확장을 거듭하고 있다. 친환경 건축이라는 담론을 이제 물질 대 물질, 표면 대 표면을 넘어 좀 더 인식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야 하는 이유다. 이렇게 충분히 자연 이상의 환경을 논의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자연과 사람의 관계는 물론 사람과 사람의 관계를 포함하는 포괄적인 환경에 대한 건축적인 다양한 해결과 접근이 모두 친환경일 수 있다.

이미 파사드는 재료에서 시작해 물성과 기술, 과학을 거쳐 인식적 철학에 이르는 여행을 오래전에 끝냈다. 디지털화로 급변하고 있는 현대의 삶은 매 순간이 유동적이다. 건축물에서 파사드는 태생적으로 공간을 담아내야 하므로 유동적인 사회의 새로운 가치에 대응할 수 있는 유연성을 제공하는 디자인 목표로서 중요성이 부각되어야 한다. 물성을 갖춘 결과물로서 파사드가 재료, 물성, 조직, 형태 또는 형식의 논의 이전에 어떠한 사회적인 가치를 담을 것인가에 대한 깊은 건축가의 고민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직관적으로 인지되는 건축의 파사드에 담기는 이러한 가치와 철학은 누구나 인식적으로 주변을 지배하고 사회와 도시를 향해 퍼져나감으로써 인간의 삶을 더 나은 방향으로 이끄는 건축의 사회적인 역할을 달성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로 네트워킹되어 있는 현대에서 개인의 능력이나 창의성이 집단의 그것을 넘어서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무한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개개인들은 감각적으로 네트워크에 종속되고 영향을 주고 받는다. 개개인의 요구들은 다시 다양한 조합으로 수많은 패턴을 만들어내고 다시 공유되면서 선호로 구분되며 트렌드로 소비된다. 단순하고 획일적인 가치 시스템이 지탱하던 시대를 반영하는 건축이라는 것이 형태적으로 일관성을 가질 수 있던 낭만적인 시절은 이미 지나버렸다. 다양성과 다가치, 그리고 그 혼종의 생성과 소멸이 더 빠르게 진행되는 사회에서 네트워크에 소속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소양인 소통, 그 안에서 생성되고 수용되어 소비되는 가치들을 지속적으로 읽어내려는 트렌드에 대한 관심, 다양한 트렌드 속에서 다시 사회를 읽고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 수 있는 가치와 구현 방법을 찾아내는 통찰이 새로운 시대의 건축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능력이다.

 

서 정 훈     디자인전략 이사
주거, 교육, 병원, 리조트 등 다양한 분야의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특히 아쿠아리움 설계에서 국내 최고의 경험과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 HOK London Office(2007)와 간삼건축 UAE 지사장(2011~2013)을 거쳐 다양한 해외문화 경험 또한 균형 잡힌 건축적 접근의 배경이 되고 있다. 2014년부터 디자인전략을 맡아, 간삼건축의 주요 프로젝트에서 기존의 건축영역 경계를 허물며 새로운 건축가치 규정, 집단창의 프로세스의 가치를 풍성하게 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Gansam G-Style vol.44

출처 : http://www.gansam.com/g_style/human_view/index/169/?page=1